▲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박경철 안동 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이 지난 달 29일 대전 충남대 정심화홀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한국의 미래와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대담형식을 빌린 강연을 하고 있다. ⓒ뉴스톡

누군가 말했듯이 안철수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구루(Guru)다. 20~30대 직장인이 꼽은 최고의 멘토는 안철수였는데 2위인 반기문과의 선호도 차이가 곱절에 가까웠다.

안철수는 1년에 약 3000건의 강연요청을 받고 있으며 그가 강연을 하는 곳에는 청년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20~30대 청년들을 그토록 열광시키는 안철수의 매력은 무엇일까? 탄탄한 실력 실력이 뒷받침된 형식파괴 수줍은 듯 강직한 특유의 원칙과 명분이 아닐까.

의학을 전공한 26세 청년이 컴퓨터 전문가들도 취급하기 어려운 상당한 난이도의 바이러스 백신(V3)을 세계최초로 개발한 컴퓨터 의사가 되었고 그 후 ‘안철수 연구소’를 설립해 보안업체 CEO가 됐으나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미국유학길에 올라 MBA를 땄으며 카이스트 석좌교수가 된 뒤 또 다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런 그의 변신은 출세욕이 아닌 자유의지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는다.

그는 꼭 무엇이 되고자 하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이 땡기는대로 새로운 도전을 했고 미래를 개척해 나갔다. 박사학위를 받은 의대교수가 느닷없이 컴퓨터 프로그래머이자 촉망받는 CEO로 바뀐 것은 오로지 그게 더 좋아서였다.

그는 의사나 교수로서도 훌륭했겠지만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그가 더 좋아하는 컴퓨터에서 그의 재능이 만개했다. 흔치않은 일이긴 하지만 청년들이 안철수에게 열광하는 이유의 핵심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 본다.

그는 스스로 고백했듯이 성과물보다 과정에 더 높은 가치를 두었다. 그런 삶의 철학이 그의 성과물이 되었다. ‘C.S 루이스’는 惡의 상징적 비유로 ‘관료주의’를 들었다. 쾌적한 사무실에 앉은 깔끔한 엘리트들의 세련된 화술과 논리 편의성으로 똘똘 뭉친 저주받은 화합 대중을 속이는 성과물인 전시행정. 오죽하면 ‘C.S 루이스’는 관료주의자보다는 박쥐가 훨씬 더 낫다고 말했을까. 안철수 신화는 관료주의의 파괴라는 통쾌감을 선사한다.

오늘날 청년들로 하여금 고시패스와 대기업 입사에 목을 매게 만든 원흉은 바로 관료주의에서 비롯된 것일 터다. 神도 들어가기 힘든 직장 평생 보장되는 철밥통 결혼후보 1순위 그에 따른 우월감... 청년들이 안철수에게 열광하는 것은 그런 우리사회의 악순환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간절한 바램의 반영일 것이다.
 
안철수는 청년들의 고뇌와 절망을 그 누구보다 공감하고 이해한다. 그래서 그는 청년들의 대변자가 되어 격렬히 분노한다.

“(청년들이) 도대체 뭘 하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뭐가 적성에 맞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사회에서 주어지는 트랙별로 가는 게 썩 내키지 않는데 다른 대안이 없다는 거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적성과 상관없이 그냥 능력이 돼서 고시공부해서 공무원 되고 의사 되고 한다. 그 자체도 자신에게 불행한 선택이다.

카이스트는 서울대와 같이 그나마 형편이 나은 상태인데도 그 학생들이 울기까지 했다. 그러니 다른 학생들은 오죽 하겠나?”

안철수는 무신론자이며 인본주의자다. 그런데 오늘날 청년들이 부모 지도교수 성직자를 외면하고 안철수를 자신들의 멘토로 기꺼이 선택하는 것은 안철수가 자신들의 고민과 아픔에 함께 울고 함께 분노하기 때문일 것이다.

안철수는 사회구조의 악순환을 바꾸기 위해 청년들을 주축으로 한 대중혁명으로 문제해결을 모색하고 있다. 그는 가장 저비용 고효율의 방법이 선거이며 선거를 통해 결정권자를 바꾸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말한다.

안철수는 내년에 20~30대의 투표참여율이 50%까지 상승할 것을 예상하면서 전체인구 중 비중이 가장 큰 20~30대가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면 우리 사회가 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안철수의 잔잔한 그러면서 묵직한 분노가 느껴지는 대중혁명의 열기에 비하면 문성근의 ‘100만 민란’은 왠지 허접한 빈껍데기로 느껴진다. 민주와 자유가 어느 정도 정착된 자본주의 국가에서 이념적인 선동은 어느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이념논쟁 자체를 진부하게 여긴다. 그는 현실이 절박한데 이념논쟁이 무슨 도움이 되냐며 분노를 표한다. 사실 그간 보수와 진보의 갈등 보수내의 친이 친박의 갈등 진보내의 난닝구와 백바지의 갈등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가? 안철수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보수 진보의 중앙일간지를 함께 보도록 권할만큼 이념적 균형을 맞추려한다. 그는 자신의 삶의 궤적과 성과물을 토대로 실사구시적인 현실대처방안 모색에 주력하고 있다.

사람이 종교나 이념에 깊이 매몰되면 인간의 존재가치에 대한 도착된 관념에 빠지게 된다. 종교나 이념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상위개념이 바뀌는 것이다. 거기서 파생된 행동지침이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는 간단한 진리조차 외면한 채 끔찍한 비극을 몰고 온다.

안철수는 영리하게도 그 차이를 안다. 그는 이념논쟁의 허접함 대신 청년들의 생존권 개선이란 근본적인 문제를 정치이슈화 하며 내년 선거의 중심인물로 등장했다.

정치인들의 그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그를 정치권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안철수는 십고초려 운운하며 자신의 정치입문을 ‘불가능한 가능’으로 에둘러 표현하지만 그의 은근한 자화자찬은 그의 끼를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듯하다.

스타의식을 최대한 절제하는 것이 진정한 권위자의 덕목임을 잘 알기에 그는 당분간 청년들의 비의(秘意)적 제사장 역할에 충실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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