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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트럼프의 패배, 트럼피즘도 종말? - 한국 개혁진보정치에 던지는 질문
더불어민주당, 개혁진보정치의 협력과 연대의 틀을 위협
 
서규식 기자 기사입력  2020/11/26 [19:22]
▲ 이영주(경기도의원/전환과 미래 연구소장)     © 서규식 기자

 

트럼피즘의 4년 

 

2016년 트럼프는 미국 대선에서 승리했다. 대선 후 전문가들은 미시건, 위스콘신, 펜실바니아 등 쇠락해버린 제조산업 지대의 몰락한 백인 중산층이나 노동계급의 상실감과 분노를 자극하며 자신의 지지자로 만들어 놓은 트럼프의 선거 전략을 승인으로 꼽았다.

 

 

퇴락에 따른 상실감을 공유하고 있던 러스트 벨티안들은 미국 제조업 파탄의 책임을 오바마와 민주당 정부로 돌리며, 보호무역주의와 고립주의를 통해 몰락한 중산층과 노동계급을 복원시키겠다는 트럼프의 단순명료한 주장을 받아 들였다.

 

 

중국과 일본, 한국 등지에서 밀려들어오는 저가의 제품들로 자신의 가정을 채워 나갔던 미국인들이 이제 자신들의 공장에서 생산하는 미국의 제품들로 온 가정들을 다시 채우며 부활을 꿈꾸었다고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트럼프는 값싼 원자재와 노동력을 찾아 외국으로 떠났던 미국의 기업들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미국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도록 했다.  

 

누가 어떤 비판을 하든 트럼프는 일관되게 자신의 길을 선언했고 미국인들은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는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 산업, 군수산업과 금융산업에 규제가 아닌 자유를 허용하겠다고 했고, 감세 정책을 통해 기업과 최상층 계급에게 확실한 이득을 안겨주겠다고 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을 통해 백인 저학력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미국에 도전하는 세력에 강경 대응하며 미국의 세계 패권을 회복하겠다는 주장을 참으로 일관되게 쏟아냈다. 

 

‘용맹스러운’ 트럼프는 백인을 아메리카 대륙의 주인으로 천명하고 인종주의자를 수석전략가의 자리에 앉혔으며, 초강경 반이민 노선을 주창하는 사람을 법무무 장관으로 임명했다. 공교육 시스템의 해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무용론,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 무산, 파리 기후변화협약 무력화, 국경 폐쇄, 동성애 반대, 낙태 금지, 성차별 정당화 등 트럼프의 언행은 재빠르게 움직였고 미국인들은 열광했다.

 

이렇게 트럼프는 전 지구적 패권 회복이라는 달콤한 과실에 대한 상상을 자극하며 미국 내부의 모순과 갈등을 우회하며 대권을 움켜쥐었다. 대선 후 4년 동안 미국의 다수는 바로 이‘트럼피즘’을 열망하고 추종했다. 

 

‘탈’트럼피즘 혹은 ‘후기’ 트럼피즘?

 

2020년 11월 미국인들은 트럼프에게서 왕관을 거두어들였다. 또 다시 러스트 벨트가 부상했다. 4년 전 트럼프에게 승리를 안겼던 러스트 벨티안들은 약속이라도 하듯 트럼프와 매우 소심한 이별을 선택했다.

 

아주 약간의 사람들이 트럼프 대신 바이든을 선택하는 쪽으로 이동했을 뿐, 숫자를 놓고 보면 4년 전과 큰 차이는 없었다. 확 돌아서지도 않고 확 밀어주지도 않은 아주 소심한 변심 정도였다. 트럼프에서 바이든으로 이동한 소수의 선택이 대선 결과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는 점에서 미국 선거제도의 ‘괴상한’ 위력을 다시 한번 확인했을 뿐이다. 

 

4년 동안 천방지축 용맹스럽게 움직인 트럼프에게 이별 인사를 한 소수를 제외하고 나면 2020 미국 대선 결과는 미국이 정확히 ‘후라이드 반’‘양념 반’파 간의 대결 사회 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차이가 크지 않다.

 

후라이드든 양념이든 결국 치킨이다. 미국은 더 큰 치킨, 더 강한 치킨을 길러내고자 하는 공통적인 지향점을 가지고 있지 결코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트럼프식 화끈한 ‘양념 치킨’을 우선할 것인지, 바이든식 은은한 ‘프라이드 치킨’을 우선할 것인지의 차이 정도라고 봐야 한다. 왜 그럴까?

 

미국은 지난 15년 정도 자신이 견고하게 구축해 놓은 군사, 정치, 경제, 학문, 문화 등 모든 측면에서 여러 국가들로부터 도전과 저항을 받아왔다.

 

미국의 전 지구적 패권에 대한 저항과 해체 경향은 미국의 지배 집단의 불안감을 자극했다. 2016년 트럼프의 승리는 바로 미국의 지배층이 가지고 있는 불안감과 미국 패권의 회복이라는 정치적 필요성을 반영한 것이었다.

 

이 당시 홍세화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지배층이 가지고 있는 총체적 위기감에 주목했다. 그는 “금융위기와 경제 침체, 신자유주의의 실패(중산층의 몰락과 절대 빈곤층의 급증, 부의 집중과 불평등 심화, 실업자 증가와 노동 안정성 퇴보, 복지 시스템과 사회 안전망의 해체 등)와 이에 대한 저항, 이라크 전쟁을 포함한 미국이 개입한 크고 작은 전쟁에서의 실패, 세계 질서의 다극화와 신냉전 질서의 형성, 대의제와 민주주의 시스템의 실패에 대한 비판 확산 등 미국의 종합적인 위기 상황에서 2016년 미국 대선이 위치해 있었으며, 힐러리 클린턴과 트럼프 모두 미국 패권의 회복과 재형성이라는 지배층의 정치적 필요를 충족시키고 대중의 동원 혹은 지지를 이끌어내야 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클린턴과 달리 보다 확실하고 강력한 메시지들로 미국의 패권 회복이라는 전선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강력한 국가, 인종주의, 외국인 혐오와 이민자 반대, 기독교 보수주의, 시민들의 자유권 제한과 같은 극우 포퓰리즘의 대오를 구축했다. 그리고 이때 대서양 저편 유럽에서도 또 다른 트럼피즘이 거세게 불어닥쳤다.

 

대표적으로 영국은 브렉시트를 감행했고, 영국인들은 대영제국의 주권 약화를 통탄해하며 이민자, 엘리트 정치인 집단, 기득권에 대한 강력한 증오심으로 극우주의의 물결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2020년 트럼프는 아슬아슬하게 졌지만, 트럼피즘은 여전히 유효하다. 미국은 트럼피즘과의 이별(탈 트럼피즘)이 아닌 또 다른 형태의 ‘후기 트럼피즘’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의 개혁진보정치는 어디로 향하나?

 

이명박근혜 정권을 돌아보자. 대통령과 국회의원, 지자체장과 지역의원들이 국민에 의해 선출되고 다양한 세력들이 자유롭게 정치적 경쟁을 벌이는 것 같지만 국가-자본-관료-선출되지 않은 실질적인 권력 집단들(특히, 비선이나 언론과 학계의 이데올로그)은 한국판 네오파시즘 체제를 구성했다.

 

전체주의적 국가권력의 작동(경찰, 검찰, 국정원 등 폭력 장치들의 전면화), 프락치나 일상적인 감시자 확대, 온갖 형태로 수행된 미디어 통제, 네오파시즘 이데올로그의 양성과 지원, 정보와 여론조작, 통치와 자본축적의 일체화를 위한 국가-대자본과의 거래와 연정, 비선과 같은 비밀권력에 의한 공공부문의 장악, 국민 동원과 선전선동을 통해 강력한 통치권력을 유지하려는 오래된 한국형 극우보수정치가 전면화되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적폐청산’이라고 불리는 프로젝트는 사실 미국 트럼피즘이나 유럽의 극우주의, 이명박근혜 정권과 같은 거대한 극우보수정치의 국제-국내적 맥락들을 읽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IMF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의 확장, 재벌 경제로의 복귀 혹은 전략적 타협, 극우보수 정치 세력 및 거대 기득권 집단과의 타협, 국가권력과 관료 시스템에 대한 개혁 실패 혹은 의존도 심화와 같은 오류와 실패에 대한 다양한 비판들을 이제 다시 읽어야 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정치적 자유주의 개혁 노선의 일정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결국 국가+신자유주의 발전 노선이 가져온 정치, 사회적 혼란과 불안, 갈등과 상실감은 결국 유권자들이 정치적 자유주의 개혁 노선이 아닌 이명박근혜식 네오파시즘을 선택하게 만들었던 이유도 곱씹어야 했다. 자신이 처해있는 불평등하고 불리한 삶의 조건들이 개선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극우보수정치에 기대를 거는 이유를 알아야 했다. 

 

전쟁을 경험했던 사람, 절대적인 빈곤 상태에서 부를 불려나가며 배를 채워가는 성공을 경험했던 사람, 민주주의나 다원주의 사회 보다 전체주의적 질서(가부장적 질서를 포함)에 익숙한 사람,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데 익숙한 사람, 위가 있어야 아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기업이 살아야 내가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 모든 것을 국가 간 경쟁으로 간주하며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 과정보다 결과를 우선시하는 사람, 강한 놈이 살아남고 약한 놈은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사회진화론을 체화하고 있는 사람, 멈추지 말고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자유보다는 통제와 훈육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스스로 노력해서 살아남아야 하며 그렇지 못한 자들은 구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다른 것보다 같은 것으로 통일시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반을 차지하고 극우보수정당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비선실세 국정농단과 박근혜-최순실 비밀정부 게이트, 촛불광장정치, 박근혜 파면과 국정농단 세력 수사, 이명박근혜 적폐청산 작업들이 쉴틈없이 이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전개되고 있는 국제-국내 정치경제적 흐름은 문재인 정부나 개혁진보정치에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착각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더욱 심화될 글로벌 다극체제, 중국과 러시아의 팽창, 유러시아와 중동지역의 대전환, 전 지구적인 극우혐오정치의 확산, 21세기형 국가주의의 우위, 사회 내 계급계층․인종․민족․젠더․지역 간 갈등 심화와 같은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충돌 속에서 문재인 정부와 개혁민주정치는 더욱 힘들고 안개 속을 헤맬 것이다.   

 

그래서 개혁진보정치의 협력과 연대가 중요하다. 시민들이‘나는 살고 너는 죽어야 한다’는 적대와 혐오, 대립과 공세에 기반한 극우보수주의의 손을 들지 않고 관용과 포용, 다양성과 개방성, 자유와 민주, 평등과 평화, 공정과 정의, 생태와 반차별의 가치들을 지향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개혁진보정치세력들이 각자의 방법론을 가지고 연대해야 한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이 개혁진보정치의 협력과 연대의 틀을 위협하고 있다. ‘국민의힘만 아니면 돼’, ‘이명박근혜만 아니면 돼’, ‘윤석렬만 아니면 돼’, ‘조중동만 아니면 돼’를 외치다 ‘민주당만 돼’,‘문재인만 돼’, ‘조국만 돼’, ‘추미애만 돼’, ‘김어준만 돼’ 하더니 ‘정의당은 안돼’, ‘민주노총은 안돼’, ‘조금박해(조응천, 금태섭, 박용진, 김해영)는 안돼’식의 자기폐쇄적 목소리에 갇혀 들고 있다.

 

개혁진보정치의 방향과 가치에 대한 토론은 사라지고 누구, 누구 하는 사람만 남아 있다. 배제와 증오, 적대와 끼리끼리 정치만 남고 협력과 연대, 공감과 가치 공유의 정치가 사라지고 있다. 개혁진보정치가 직면한 거대한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과제들을 연구하고 토론하며 방법을 찾는 책임있는 정치는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우리 이대로 괜찮은 걸까? 지금 이렇게 하면 개혁진보정권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우리는 트럼피즘과 이명박근혜 시대의 네오파시즘과 정말 굿바이할 수 있기나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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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1/26 [19:22]  최종편집: ⓒ 뉴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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