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후 인터뷰] 창단 25년을 맞은 고양필하모닉오케스트라 안현성 감독고양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 “소통와 전달을 통해 클래식 대중화 앞장설 것”
“베토벤 음악은 워낙 좋기 때문에 달리 말할 필요도 없지만 오늘 바이올린 협주곡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협연자의 연주 스케일도 놀라웠을 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와의 호흡이 정말 뛰어났습니다. 교향곡 7번 역시 종종 들었던 작품인데 또 다른 감동을 느꼈습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네요. 당분간 베토벤 음악에 빠져 지낼 듯 합니다.”
지난 10월 24일 고양 아람누리 음악당에서 열린 고양필하모닉오케스트라(이하 고양필) 창단 25주년 음악회가 끝난 뒤 만난 한 관객은 연주회의 감동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로 이날의 공연을 평가했다. ‘Master Piece from Beethoven’ 이란 주제로 열린 이날 공연은 창단 25주년을 맞은 고양필의 두 번째 기념 음악회라는 점에서 지휘자와 단원, 관객들 모두에게 더욱 뜻깊은 시간이었다.
25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시간동안 고양필을 이끌어온 안현성 감독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달려왔는데 우리의 연주를 보로 와주신 관객들이 오랫동안 환호와 박수를 보내 주셔서 노고를 보상받은 느낌 이었다”면서 이날 공연의 소회를 전했다. 음악회가 끝난 뒤 만난 안 감독은 차분하지만 열정이 가득한 음성으로 오케스트라와 함께 해 지나온 시간에 대해 이야기 해 주었다.
해마다 정기 공연을 비롯해 여러차례 연주회를 진행하고 있지만 25주년은 안 감독과 단원들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안 감독은 "처음에는 기념일의 수에 그다지 중요성을 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5주년이 다가오면서 전과는 또 다른 책임감이 느껴졌습니다”라면서 올해 진행된 두 번의 정기공연을 돌아 보았다. 숫자가 주는 무게감 때문에 어느때 보다 부담감이 큰 것도 사실이었다는 안 감독은 그래서 스스로 마음가짐을 단단히 했고 단원들 역시 좀 더 특별한 생각으로 연주에 임했다고 전했다.
25년 전 고양필 창단 당시 고양시를 비롯한 경기북부 지역은 그야말로 예술의 불모지였다. 독일 유학생활을 마치고 고양시에 터를 잡은 안 감독이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고 연주회 여정을 시작하자 응원 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 컸다. 문화 예술에 대한 저변이 약한 곳에서 시작된 오케스트라가 오래 유지될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연주회를 진행 할 때 마다 적지 않은 예산이 필요한 만큼 고양필이 오랫동안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말들만 무성했다.
그런 시선들이 무조건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해를 거듭하고 공연을 진행 할 때마다 넘어야 할 난제들 역시 차곡차곡 쌓였다. 그럴 때 마다 안 감독과 단원들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신념 하나로 버텼다. 무엇보다도 클래식 대중화라는 고양필의 구체적인 목표를 보고 25년의 시간을 이어 왔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이전까지는 귀족들이나 교회를 위한 음악 이었던 클래식이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시민들의 일상에 스며 들었습니다. 음악가들을 후원하는 것이 귀족들의 특권 이었는데 점차 일반 시민들 역시 클래식을 듣고 후원 하면서 대중화가 성공하게 된 것이죠. 이제 클래식은 유럽 사람들에게는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그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 입니다. 선교사들을 통해 전해지면서 일반인들하고는 동떨어진, 단지 상류층들이 점유하고 즐기던 음악이 되었던 것이지요. 그 때문에 여전히 특별한 사람들만이 듣는 음악으로 인식이 많은데 저와 단원들은 그러한 인식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클래식 대중화를 위한 고양필 만의 노력으로 안 감독은 먼저 소통을 꼽았다. 단원들 각자가 전체적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필요한 상황에 맞는 음색과 밸런스, 음정 등을 찾고 다시 서로 간의 합을 맞추어 가면서 함께 연주를 만들어 가야 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는 안 감독은 공연 리허설 때마다 오케스트라 합주는 지휘자와 단원들이 함께 완성시키는 일임을 강조한다. 모든 단원들이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소통하고 노력하면 그것이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고양필만의 음악적 색깔 역시 이같은 소통에서 만들어 지고 있다.
소통과 더불어 안 감독이 중시하고 있는 또 한가지 요소는 감정의 전달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저서에서 예술이란 감정의 전이가 일어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감정의 전이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예술이 아니라 해프닝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저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입장에서 공연 때마다 관객들에게 고양필이 전달하고자 하는 여러 가지 감정의 전이가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임해왔습니다. “
감정의 전달을 위해 단원들과 소통하고 또 관객과 소통 하면서 클래식 음악이 마냥 어렵고 공부를 해야만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음악 그 자체로써 가볍게 들으면 된다는 점을 알리고자 노력해 왔다는 그는 그래서 25년 동안 이어온 모든 연주를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정기 공연은 물론 색다른 주제의 기획공연 역시 할 때마다 감동과 여운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공연이 그에게는 살아있는 역사로 남아 있다. 그런 그에게도 특별한 기억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2020년에 진행했던 ‘한국의 날 기념 음악회’다.
“고양필이 2020년 한국의 유엔 가입 20주년을 기념하는 '한국의 날 기념 음악회’에서 SBS와 함께 베토벤의 6번째 '전원 교향곡'을 유엔 본부와 모든 회원국에 생중계 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이라 현장에 직접 참가하지 못한게 아쉬운 일이지만 그 때의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고 자랑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당시의 감동이 아직까지도 생생 하다고 전하는 안 감독은 25년을 돌아보면 힘들지 않은 시간이 단 한순간도 없지만 그럴 때 마다 긍정적인 면에 집중하고 있다. 스스로를 ‘흔들리지 않는 낙관주의자’라고 말하는 그는 본인이 걷고 있는 길이 험난하지만 여전히 자신을 믿고 따라와 주는 고마운 단원들이 있기에 기쁘고 즐거운 날이 쌓여 조금씩 나아질 것임을 믿고 있다.
그런 안 감독이 최근에 무엇보다도 신경을 쓰고 있는 부분은 고양필이 시립이 아닌 사단법인 단체라는 것을 알리는 일이다.
고양필이라는 이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고양시가 운영하거나 적어도 고양시로부터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고양 필은 현재 단체나 개인의 후원, 그리고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이 되고 있는 사단법인이다. 그렇다고 해서 교향악단이 국립이나 시립으로 운영되어야 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를 보면 대부분 사립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비록 토양이 다르지만 우리도 이런 방식을 지향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100% 국민세금으로 운영되는 국, 시립 오케스트라 방식이 아니라 전체 운영비의 30~40% 지원 해주고 나머지는 자체적으로 후원이나 기부금, 또한 좋은 공연 기획과 연주를 통한 매표 등 자체적인 노력을 곁들여 운영해 나가는 방법이 기장 바람직하다는 것이 안 감독의 생각이다. 그렇게 해야 단원들의 실력도 나아지고 관객들에게 수준 높은 음악을 들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립, 시립 단체들이 아닌 이상 대부분 적자를 고민하고 있는데 고양필 역시 다르지 않아 연주회를 진행할 때 마다 재정 문제가 제일 큰 걱정거리다. 결국 이 난제를 풀기 위해서는 정부 및 기업의 지원과 더불어 사단법인으로서의 회원 확보가 관건이라고 믿는 안 감독은 안정적 운영이 가능한 기준을 정기 회원이 1천명 수준으로 보고 이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른 도시들도 좋은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특히 고양특례시는 문화도시로 자긍심이 높은 곳입니다. 베를린에는 베를린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있듯이 고양시에는 고양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있다는 자부심을 줄 수 있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고양시의 대표적인 예술단체로 그 역할을 다하고 싶다는 안 감독의 다짐 속에는 음악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미래를 이야기 하는 예술가의 집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저작권자 ⓒ 뉴스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고양필하모닉오케스트라, 고양필, 안현성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인터뷰 WHO 많이 본 기사
|